건설업계, 브랜딩의 힘

기사승인 2024-04-21 06: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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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브랜딩의 힘

브랜드는 기업을 소개하는 명함이자 간판이다. 대중도 업체명보다 브랜드를 더 기억한다. 건설사도 그렇다. 철근이 빠지고 폭우에 빗물이 새는 단지가 한동안 조롱거리가 됐던 이유도 브랜드를 비꼰 밈이 퍼졌기 때문이다. 순기능도 있다. 메이저 건설사라도 브랜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 브랜드가 지닌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브랜드의 탄생

아파트 브랜드는 2000년 초반 건설사들이 시공단지에 이름을 붙인 게 시초다. 브랜드엔 각사 경영철학이 녹아있다. 삼성물산 래미안은 올 래(來)·아름다울 미(美)·편안할 안(安)을 조합한 말이다. 브랜드이미지(BI)는 3개 박스로 이뤄졌는데, 가장자리 녹색 박스는 미래지향·자연·풍요로움을, 가운데 회색 박스는 아름다움·이상·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지향점은 ‘고객의 모든 프라이드를 함께하는 라이프 컴패니언’이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라이프스타일 리더’를 브랜드 철학으로 삼았다. 언덕을 뜻하는 ‘힐(Hill)’과 지위 또는 위엄을 뜻하는 ‘스테이트(state)’를 결합한 단어다. BI는 현대와 힐스테이트 머리글자인 알파벳 ‘H’에서 땄다.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을 더한다는 의미로 주요 색상도 와인색이다.

DL이앤씨 브랜드 가치는 ‘살기 좋은 아파트, e편한세상’이다. BI인 오렌지 구름은 볼은 ‘최상의 편안함, 따뜻하고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밖에 △‘특별한 지성’을 뜻하는 GS건설 ‘자이’ △친환경 주거 철학을 집약한 대우건설 ‘푸르지오’ △성(成)과 독수리휘장으로 고급화를 추구한 롯데건설 ‘롯데캐슬’ 등이 친숙한 브랜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인지도 높은 브랜드는 이름값을 한다. 시공능력 차이가 크지 않으면 발주처도 유명한 브랜드를 선호한다. 건설 계열사가 기존 브랜드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공시에 따르면 현대건설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과 ‘힐스테이트’ 브랜드 1년 계약을 맺었다. DL이앤씨 자회사인 DL건설도 ‘e편한세상’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양사는 자체 브랜드 개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힐스테이트’가 자사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는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규모가 비슷한 시공사에게 맡길 거라면 브랜드 가치가 있는 곳을 다들 선호하니까 그런 면에서 유리하다”고 전했다.

지금은 하이엔드 시대

건설사들은 소득 수준이 높은 이들의 주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했다. 인테리어, 커뮤니티, 조경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하이엔드’가 그것이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디에이치(현대건설) △아크로(DL이앤씨) △오티에르(포스코이앤씨) △드파인(SK에코플랜트) 등이 있다.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한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서울 분양·입주권 매매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고급주택 시장 바람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가진 건설사끼리 경쟁하곤 한다. ‘여의도 재건축 1호’인 한양 아파트 수주를 위해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참전한 바 있다.

대우건설도 하이엔드 브랜드 ‘푸르지오써밋’을 사용하고 있다. 올해 부산 범일동에 ‘블랑써밋 74’를 적용할 예정이다. 아직 입찰 전인 개포주공5단지에도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통해 당사 주거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