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 “세월 덕에 완성한 ‘밀수’, 운 좋았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7-26 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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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 “세월 덕에 완성한 ‘밀수’, 운 좋았죠” [쿠키인터뷰]
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그리고 조인성.’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엔딩 크레디트에서 조인성의 이름은 가장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다. 상영 시간 129분 중 그가 출연하는 분량은 5분의 1가량. 그러나 그가 소화한 액션 장면은 실관람객 사이에서 회자된다. 걸출한 액션 때문만은 아니다. 첫 등장에서부터 보여준 번뜩이는 눈빛이 살벌함부터 뜨끈하며 미묘한 감정까지 담아내서다. 그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관객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등 존재감을 뿜어낸다.

“못 보겠어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요.” 지난 21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인성은 강렬한 첫 등장을 언급하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연기한 권상사는 월남전에서 무공을 세우고 돌아와 국내 밀수판을 꽉 잡은 인물. 등장하자마자 춘자(김혜수)의 머리를 면도날로 그어버리는 등 위압적인 면을 드러낸다. “김혜수 선배가 실감 나게 떨어준 덕에 권상사가 강력해 보인 것”이라고 공을 돌렸지만, 그는 극 내내 분위기를 압도한다. 조인성은 권상사를 “인물 사이 아교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 봤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보다 프로듀서의 입장으로 권상사에게 다가갔다는 설명이다.

“류승완 감독님과 전작 ‘모가디슈’를 하며 신뢰와 친분을 쌓았잖아요. 출연에 큰 고민은 없었어요. 권상사는 춘자와 진숙(염정아)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이에요. 감독님이 저를 이 정도만 필요로 하시면 저 역시도 당연히 응하는 거죠. 분량도 적절했어요. 주인공이 아닌 만큼 매력적으로 보이겠다는 욕심도 없었어요. 제가 할 만큼의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조인성 “세월 덕에 완성한 ‘밀수’, 운 좋았죠” [쿠키인터뷰]
‘밀수’ 스틸컷. NEW

조인성은 ‘밀수’에 운 좋게 합류했다. 출연을 논의할 당시 그는 디즈니+ ‘무빙’ 출연을 확정하고, 촬영 전 휴식기인 3개월을 ‘모가디슈’ 홍보에 쏟기로 한 때였다. 그 기간을 ‘밀수’가 파고들었다. 그의 출연 분량은 15~18회차 정도. 그 이상이었으면 촬영 자체가 불가한 일정이었다. 그가 “권상사 분량이 적절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무빙’과 ‘밀수’의 액션 연습장이 같은 곳인 것도 천운이었다. 여러 운이 더해지며 그는 기적적으로 ‘밀수’에 합류할 수 있었다.

권상사 캐릭터에는 기능적으로 접근했다. “특별한 매력보다는 국면을 전환시키는 캐릭터로서 역할을 다하려 했어요. 판을 키우는 존재로 쓰여야 했거든요.” 때문에 그는 권상사의 매력을 살리는 것보다 제 역할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호흡이 더해지며 권상사는 막강한 신 스틸러로 떠올랐다. 극 중 권상사가 장도리(박정민)와 맞붙는 장면에서 춘자와 애절한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이 그렇다. “멋있게 하려고 한 건 아니”라고 말을 잇던 조인성은 “둘이 어떤 관계일지는 관객 해석에 맡기고 싶다. 보이는 대로의 관계”라며 웃었다.

품위 있는 캐릭터로 만들고자 한 건 조인성과 류승완 감독의 의지다. 조인성은 “장도리가 군천의 우두머리라면 권상사는 전국구”라며 “위치에 걸맞게 품위를 놓지 않길 바라는 감독님의 명확한 지시를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권상사는 허술한 면을 보여준다. 장도리, 춘자와 함께 타고 있던 배가 흔들리자 마구 휘청거리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여러 면모를 담아내자 지금의 입체적인 권상사가 탄생했다. 조인성은 “현장감이 더해진 덕에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며 “의외성이 권상사를 보는 재미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인성 “세월 덕에 완성한 ‘밀수’, 운 좋았죠” [쿠키인터뷰]
‘밀수’ 스틸컷. NEW

권상사를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건 훤칠한 외모다. “이번만큼은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은 받은 것 같다”며 익살스럽게 말하던 조인성은 “나이 덕에 더욱 질감이 살아난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20대 당시 연기한 ‘비열한 거리’(감독 유하)의 병두와 40대인 현재 맡은 권상사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병두가 치기 어린 혈기를 보여줬다면, 권상사는 원숙하게 상대를 좌지우지하는 등 농익은 면이 도드라졌다. 조인성은 이 모든 공을 나이에 돌렸다. 그는 “그때의 조인성이 권상사를 연기했다면 이런 면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세월이 주는 이점을 잘 받은 덕에 권상사를 잘 살릴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며 미소 지었다.

조인성은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삶을 꿈꾼다. 나이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다르다고 믿는다. 그가 “‘안티에이징’(나이 듦을 거부하는 것)보다 ‘웰에이징’(잘 나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1분 1초 나이를 먹고 있잖아요. 그걸 혐오스럽게 생각하면 괴롭기만 하죠.” 그에게 나이는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경험이 쌓일수록 캐릭터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세계가 넓어져서다. 최근 캐릭터를 이기와 이타 관점에서 파악하기 시작한 그는 인간 조인성에 관해서도 탐구 중이다. 여러 고민을 거듭하다 결정한 게 예능 출연이다. 팬데믹 시기 모두와 단절을 경험한 그는 더 가까이서 대중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tvN ‘어쩌다 사장’을 택했다. “대중이 날 보러 올 수 없다면 내가 안방으로 찾아가면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서다. 조인성은 “‘어쩌다 사장’으로 인간 조인성을 보여준다면, ‘밀수’로는 연기하는 조인성을 만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도 제 얼굴 까먹지 않게 인사드릴 거예요. 어떤 식으로든 찾아뵐게요. ‘밀수’는 저 외에도 김혜수·염정아라는 신뢰 가득한 배우가 나오잖아요. 믿어도 좋을 겁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