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선지급한 연금 17억 갚지도 않는데…

국민연금, 아직도 옥시에 700억 원 투자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 대신 지급한 유족·장애연금 총 17억800만원
국민연금, 가해 기업에 구상권 청구했으나 실제납부 금액은 1억2500만원에 불과. 10년째 납부 의무 무시하고 있어
옥시 등과 구상권 미납으로 인한 소송 중에도 국민연금은 가해 기업 투자 지속
김영주 의원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에 투자한 돈으로 연금 받기 원하는 국민 없을 것… 지금이라도 투자 철회는 물론 구상금 전액 납부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기사승인 2023-10-20 15: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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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선지급한 연금 17억 갚지도 않는데…
가해 기업별 구상금 고지 및 납부 현황 (단위: 백만 원). 김영주 의원실 제공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어 발생한 유족연금 및 장애연금이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등 가해 기업의 재정이 아닌 국민의 연금 납부액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연금공단의 부실한 구상금 관리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더욱이 국민연금공단이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11년부터 ‘옥시’에 대한 기금 투자를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어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관련 원칙과 방향성을 전면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 당김영주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구상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 10곳에 대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지급한 유족·장애연금 17억800만원을 구상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상금은 제3자의 행위로 인해 장애 및 유족연금이 지급되면, 공단이 피해자에게 연금을 우선 지급하고, 추후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직접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결정된 구상 결정액은 사망 피해자 가족에게 지급된 유족연금 11억 6,600만 원과 장애연금 5억4200만원에 해당한다.

10개 기업에 대해 고지된 총 구상액은 실제 구상 결정액 17억원보다 7억원 많은 24억30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대책임으로 인한 중복고지 금액이 포함된 액수다.

가해 기업별로는 ‘옥시’가 15억4600만원(64%)으로 가장 많았고, ‘애경산업’이 4억800만원(17%)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의 구상금 납부 실적은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납부된 금액은 총 1억2500만 원으로 전체 구상 고지액의 5.1%에 불과하다. 전체 10개 기업 중 납부 이력이 있는 곳은 옥시(1억1200만원), 홈플러스(1300만원) 단 두 곳에 그쳤는데, 2023년 납부 실적은 0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납부 기한을 엄수해 구상금을 납부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국민연금은 ‘옥시’ 등 가해 기업이 구상금을 납부하지 않아 옥시 본사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구상금 미납으로 인한 소송 건수는 총 4건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옥시’에 3천억 원 투자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연금공단이 가습기살균제 관련 해악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향후 해당 기업들에 대한 투자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2023년 7월 기준, 국민연금공단은 ‘옥시’투자 철회는커녕 70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선지급한 연금을 갚지 않아 옥시와 소송까지 벌이고 있는 연금공단이 다른 한편에서는 수백억대의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연금공단의 이율배반적인 투자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영주 의원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지고 12년이 지났음에도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들은 여전히 본인들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려 하고 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로 지급된 장애연금, 유족연금의 실제 납부 책임은 가해기업에 있는데도 이들은 반성 없이 연금 구상금 납부를 거부해 소송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며 연금공단은 대규모 살인 피해를 야기한 문제 기업의 구상금을 하루빨리 징수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김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연금은 가습기살균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민들께서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다치게 한 가해 기업에 투자한 돈으로 연금 수급을 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한편,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투자 제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