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살인자’ 연기한 이희준이 익선동 배회한 이유

기사승인 2024-02-20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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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살인자’ 연기한 이희준이 익선동 배회한 이유
배우 이희준(왼쪽)과 ‘살인자ㅇ난감’ 속 그의 모습. 노인 분장에만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넷플릭스

‘송촌이 이희준이었어?’

지난 9일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이 공개되자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1979년생인 배우 이희준이 자신보다 20세나 많은 ‘노(老) 살인마’를 연기해서다. 이희준은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뒤 서울 익선동 골목을 쏘다녔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익선동은 해가 지면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동네. “사람 구경을 하며 메모하고 그림도 그렸어요. ‘저 할아버지가 술 취해서 화내는 목소리, 좋다’ 하면서요.” 이렇게 탄생한 송촌은 온라인에서 ‘외모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만의 오래된 버릇을 가진 듯한 모습이 진짜 노인 같다’는 평을 받았다. 16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희준은 “영업비밀”이라면서도 “할머니·할아버지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직접 관찰했다”고 캐릭터 구축 뒷얘기를 들려줬다.

이희준의 메소드(인물 몰입) 연기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미 평판이 자자하다. 같은 작품에서 연쇄살인범이 된 대학생 이탕을 연기한 배우 최우식은 “희준이 형을 보며 반성했다”고 했다. 이희준의 연기 열정에 감탄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는 뜻이다. 이희준은 ‘살인자ㅇ난감’을 준비하는 동안 집에 ‘시라소니’(광복 전후에 이름을 떨친 협객) 사진을 붙여뒀다. 그가 송촌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줘서다. 직접 송촌이 돼 자화상도 그렸다. “송촌을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그의 처지에서 제게 말을 건다는 생각으로 그려봤어요.” 그는 “남에게 보여줄 만한 실력은 아니다”라며 멋쩍게 웃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미술 전시회에 참여한 바 있는 실력자다.

‘65세 살인자’ 연기한 이희준이 익선동 배회한 이유
이희준이 그린 송촌. 이희준 SNS 캡처 

20년 넘게 카메라 앞과 무대 위를 오가며 내공을 쌓은 배우가 영혼을 갈아 끼우듯 완성한 송촌은 얼핏 봐도 섬뜩하다. 자신이 악을 처단한다고 믿으며 툭하면 사람을 죽인다. 이희준은 “송촌은 자신을 청소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며 “마음이 흔들릴 때면 (범죄자들이 쓴) 반성문을 보며 간신히 마음을 붙잡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우 손석구가 연기한 장난감과는 지독한 악연이다. 송촌이 경찰이었던 시절 그의 앞날을 막은 이도, 그가 처음 해친 사람도 난감의 아버지였다. “우리 난감이 형사가 됐어?” 수십 년 만에 난감을 마주친 날 송촌은 이렇게 말하며 괴상하게 웃는다. “‘살인자 아들인 나는 또 살인자가 됐는데, 형사 아들인 너는 형사가 됐어?’ 하는 심정”이라는 해석이다. 이희준은 송촌이 식물인간 상태인 난감의 아버지를 찾아간 장면에서 이런 굴레에 한탄하는 대사도 직접 썼지만 본편에 담기진 않았다고 한다.

20대 때 다니던 대학에서 자퇴하고 연기를 시작한 이희준은 한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이후 촬영한 작품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공개시기가 계속 밀려서다. 올해는 그의 건재함을 확인할 시기다. ‘살인자ㅇ난감’과 영화 ‘황야’(감독 허명행)가 연달아 공개됐고, 디즈니+ ‘지배종’과 영화 ‘보고타’(감독 김성제) 개봉도 앞뒀다. 다음 달부턴 감독이 돼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연극 ‘그때도 오늘’ 무대에 오른다. 이희준은 “한때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나를 많이 괴롭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배역에 공감하되,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다거나 얼마나 더 인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내려놨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욕심내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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