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은 죽었습니다”…‘주호민 사건’ 판결에 분노한 교사들

기사승인 2024-02-07 06: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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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죽었습니다”…‘주호민 사건’ 판결에 분노한 교사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 SNS


“공교육은 죽었습니다. 아동학대 교사로 신고당하느니 문제 행동에 대한 지도를 포기하겠습니다.”

교사 60여명이 검은색 옷에 국화꽃을 들고 모였다. 6일 오전 10시30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선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특수교사 A씨는 항소장을 접수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특수노동조합, 현장 교사들도 A씨를 응원하기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

지난 1일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특수교사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학대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은 1심 판결에서 핵심 증거로 인정됐다. 이 파일은 주씨 측이 A씨 모르게 아들 가방에 넣었다가 확보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교사들은 이번 판결이 특수아동이란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경기 평택시에서 왔다는 2년 차 특수교사 B씨는 “특수아동이라는 특성상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교육하는 과정에서 제3자가 볼 때는 불편하게 느낄 발언들이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교사가 ‘너 싫어’라고 말하는 건, 학생이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면 너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표현이란 얘기다. 경기 성남에서 온 20년차 특수교사 C씨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왜 이렇게 말을 하지 싶을 수 있으나, 학생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표현의 기법”이라고 부연했다.

특수교사 A씨도 2022년 9월13일 경기 용인시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세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A씨는 해당 발언에 대해 “‘싫다’라고 표현한 것은 아동의 문제 행동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아동 자체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공교육은 죽었습니다”…‘주호민 사건’ 판결에 분노한 교사들
6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특수교사 A씨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경기도교육감 고문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유정 기자

교사들은 이번 판결에서 불법 녹음이 아동학대 증거로 인정된 것에 대해 우려했다. 실제 교실 안에서 몰래 녹음기를 사용하는 일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B씨는 “이제 학교에 가면 녹음기가 있나 없나부터 검사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라며 “이번 판례로 특수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불안에 떨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C씨도 “이번 판결로 녹음기 사용이 빈번해질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는 등교 시 녹음기 사용에 대해 문의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학교 녹음기’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자 ‘초등학생 아이 녹음기 달아서 학교 보내고 싶어요’, ‘학교 등교 시 녹음기 가져가도 되나요’, ‘아이 학교생활 녹음기 사용해 보신 분 계신가요’ 등의 글이 나왔다.

교사들은 이번 판결로 교육활동이 위축될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일부 교사들은 아동학대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지도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C씨는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아동학대가 될 수 있으니 지도를 하지 않아야 하나 싶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이 불법이 되고 아동학대로 인정받고 있다”라며 “이번 판결로 특수교육은 완전히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수교사 A씨는 “학부모가 자신의 감정이 상한다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교사의 수업을 녹음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녹음기 이외의 합리적인 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교사나 비장애 학부모, 장애 학부모들의 염려가 해소되길 원한다”라고 호소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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