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안 쓰면 계약 종료”…제조업 비상인데 대책 無 [위기의 RE100③]

BMW·볼보…국내 기업에 재생에너지 활용 강조
자동차 부품업계 “당장 재생에너지 활용 어려워”
전문가 “대책 전무해, RE100 산업단지 만들어야”

기사승인 2024-04-29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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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안 쓰면 계약 종료”…제조업 비상인데 대책 無 [위기의 RE100③]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음. 현대차


“수출할 만한 해외 기업들은 저희한테 다 재생에너지 쓰라고 하는데, 당장 어찌 할 방법이 없어요. 저희 같은 작은 회사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을 수도 없고….”

전 세계가 ‘탈탄소 시대’ 흐름을 타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자는 움직임이 기업들 사이에서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제도가 RE100이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 생산 전기로 충당하는 것이다. 현재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은 400개가 넘는다. 국내 기업도 삼성이나 현대차 등 21개가 가입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지난달 통계청은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4’를 통해 우리나라 에너지소비 비율에서 재생에너지가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2020년 기준 OECD 국가 4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 0.7%에서 2020년 3.63%까지 올랐다. 그러나 해외 재생에너지 소비비중은 평균 14.9%다. 한국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국내 부품을 수입하는 해외 자동차 회사들이 국내 업체에 RE100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지 않으면 계약을 무산시켜 제조업계 부담이 늘고 있다. 업계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업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활용도가 낮은 국내 제조업계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22년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해외 거래처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은 기업은 30%에 육박했다. 특히 한국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재생에너지 이용을 요구하고 있다.

KOTRA ‘해외 기업의 RE100 이행 요구 실태 및 피해 현황 조사’를 분석한 결과 최근 BMW, 볼보 등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RE100 이행을 이유로 한국 부품사들과 맺은 계약을 잇따라 취소했다. 

볼보는 국내 한 부품업체에 오는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을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해 납품하라는 요구를 했고, 다른 회사들도 RE100 이행계획을 담은 계획서를 요구하는 등 재생에너지 활용을 압박하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해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등 해외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는 기준을 맞추지 못해 일감을 뺏길 수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은 “환경이나 재생에너지 측면에서 해외 기업으로 수출하기 위한 조건이 계속 까다로워지고 있다. 3~5년 안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거나, 제품을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서류로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조건이 계속 생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당장 내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로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다른 부품 제조기업 관계자도 “솔직히 한국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수월한 나라는 아니다. 애초에 발전량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한 대책이 그려지지 않는다”며 “이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업계는 계속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재생에너지 안 쓰면 계약 종료”…제조업 비상인데 대책 無 [위기의 RE100③]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문가는 인력과 자본이 적은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소기업 부품 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하려고 할 때는 굉장히 고민이 많다”며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 국경 조정제도가 생기면서 점점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부품 수출 시 준비할 수 있는 인력이나 자본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요구사항을 지키기 어렵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 재생에너지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당연히 자동차 부품업계 일자리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품사뿐만 아니라 완성차들도 재생에너지 활용에 힘을 주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관계자는 “부품 업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며 “어쨌거나 조립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의 탄소값을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최근엔 부품업체 뿐만 아니라 자동차 회사들도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에 비해 재생에너지 정책이 너무 더디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해외는 이미 재생에너지 활용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들이 많고 시행하고 있다”며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건 한국 제조업을 죽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한국은 재생에너지 생산량 자체가 너무 적어서 하루아침에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것이 어렵다”며 “한국이 생산하기 수월한 태양광과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발전 입지를 정해 RE100 산업공단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활용이 시급한 기업들부터 입주시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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