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만난 콘텐츠, 기회인가 위협인가

기사승인 2024-06-20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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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공지능 시대 도래에 따른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단체 시위에 나섰던 미국 작가조합. AP 연합뉴스

# 영화 ‘타이타닉’과 ‘아바타’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춘 범용인공지능(AGI)이 자신을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영화·TV 제작자연합(AMPTP) 역시 인공지능(AI)이 작품 제작에 투입하는 시간과 비용을 아껴준다며 이를 높이 샀다. 반면 동 시기 미국 작가조합(WGA)은 인공지능이 작가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하며 단체 파업에 돌입했다. 

# 지난 2월 두바이에서는 제1회 두바이 국제 AI(인공지능) 영화제가 열렸다. 전 세계 출품작만 500여편에 달할 정도로 인기였다. 내달 열리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영상혁명에 적극적으로 상생하겠다는 취지로 ‘BIFAN+ AI’ 공식 사업을 추가했다. 

미디어 산업에서 인공지능이 화두로 떠오르며 그에 따른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과 초상권 문제 등으로 반작용이 거세게 일었던 것과 달리 비용 절감 및 한계 확장 등 새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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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석구가 주연한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은 딥페이크 기술로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구현해 갑론을박을 낳았다. 넷플릭스

“AI가 밥그릇 뺏는다” 불안한 창작자들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는 작가조합과 배우조합(SAG-AFTRA)이 파업을 선언하며 제작 시스템이 완전히 멈춰 섰다. 제작을 마친 개봉 예정작들의 공개 일정 역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가량 밀렸다. 작가·배우 조합이 집단 의견 개진에 나선 건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권리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제작사 측이 AI를 활용하게 하며 저작권이나 비용 지급을 불리하게 적용한 데 따른 대처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 활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지난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는 배우 손석구와 똑 닮은 아역이 등장해 화제였다. 하지만 이후 실제 아역배우 얼굴에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해 손석구의 얼굴을 덧씌운 게 알려져 갑론을박이 일었다. 비슷한 시기 배우 박은빈의 얼굴을 아역 배우들에게 합성한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신인이 얼굴을 알릴 기회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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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배우 최민식의 젊은 시절을 구현한 디즈니+ ‘카지노’.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 유튜브 영상

편의 더하고 비용 낮추고…한계 넘는 인공지능

업계는 인공지능이 가진 가능성에 주목한다. 기술 발전이 제작 용이성을 더하면서도 비용은 낮춰준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공개된 디즈니+ ‘카지노’는 인공지능 활용의 좋은 예로 꼽힌다. 제작진은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차무식의 젊은 시절을 인공지능과 데이터 추출 기술을 접목한 디에이징 기술로 구현했다. 디에이징은 배우를 어려 보이게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도 젊게 만들 수 있다.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은 콘텐츠 산업 포럼에서 “캐릭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차무식의 3~40대 시절을 이질감 없이 표현하는 데 신경 썼다”고 했다.

자본 문제에 허덕이는 제작 현장에서 인공지능은 새로운 대안으로 통한다. 제1회 두바이 국제AI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대상을 수상한 권한슬 감독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12일 서울 다동 CKL 스테이지에서 열린 ‘2024 콘텐츠산업포럼’에서 “영화를 완성하는 데 고작 3명의 인원과 5일, 전기세와 밥값만 필요했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인공지능 영상기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집행위원장은 지난 13일 열린 개최 회견 자리에서 “자본으로 인해 획일화된 제작 시스템하에 성장한 영상 생태계는 심각한 양극화에 놓여있다”면서 “이젠 아이디어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수준 높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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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다동 CKL 스테이지에서 열린 ‘2024 콘텐츠산업포럼’에 참석한 권한슬 감독이 인공지능으로 만든 단편 영화 ‘원 모어 펌킨’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양날의 검 된 인공지능…“명확한 기준점 필요해”

현재 인공지능 관련 법안은 전 세계서 뜨거운 감자다. 유럽연합(EU)은 법 개정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인공지능 생성 콘텐츠에 별도 표시를 넣도록 하고 있다. 인공지능 규제법을 만든 건 유럽연합이 최초다. 미국 역시 글로벌 과학 네트워크를 신설, 여러 국가와 함께 인공지능 정책 마련에 매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공지능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 등 132개 기업이 뭉친 ‘초거대 인공지능 협의회’가 인공지능 기본법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활용에 있어 준거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대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열린 2024 서울 저작권 포럼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이 기술 혜택을 만끽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창작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배우·작가 파업이 대표적인 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쿠키뉴스에 “인공지능이 비용을 낮춰줄 순 있어도 고도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는 부적합하듯이 완벽한 미래 대안은 아니”라면서 “어떤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할지에 관한 명확한 기준점과 철학이 생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