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엄정화 [브라보 차정숙]

기사승인 2023-05-31 06: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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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엄정화 [브라보 차정숙]
JTBC ‘닥터 차정숙’ 스틸컷.

시대의 아이콘, 올 타임 레전드, 한국 대표 디바 그리고 ‘정숙씨’. 가수 겸 배우 엄정화의 수식어에 낯선 호칭이 더해졌다. ‘정숙씨’는 현재 방영 중인 JTBC ‘닥터 차정숙’에서 그가 연기한 차정숙 역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엄정화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닥터 차정숙’으로 흥행 홈런을 친 그가 요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다름 아닌 안무연습실. 그는 얼마 전부터 tvN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전국 각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객석에선 ‘정화언니’와 ‘정숙씨’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엄정화 전성시대다.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준 계기는 ‘닥터 차정숙’이다. 자체 최고 시청률이 18.5%(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경력단절 여성이 제 삶을 다시 찾아가는 이 이야기는 엄정화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인물을 자연스럽게 그리면서도 감정을 훅 건드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가 이끄는 대로 차정숙의 심정을 오롯이 느끼다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죽음의 문턱을 넘고 “뻔뻔하게 살겠다”며 제쳐뒀던 의사 꿈에 도전하는 차정숙. 현실 벽은 만만찮다. “젊은 친구가 잘못하면 실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의 잘못은 무능”이라는 쓴소리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차정숙은 스스로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자부한다. 방송 전 제작발표회에서 엄정화는 “모든 상황이 나와 닮은 차정숙에게 공감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영원히, 엄정화 [브라보 차정숙]
JTBC ‘닥터 차정숙’ 스틸컷.

경력단절, 적지 않은 나이… ‘약점투성이’ 차정숙에게서 엄정화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배우로서 늘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어서다. 차정숙이 인생에 닥친 파도를 무사히 건너겠다는 일념 하에 행복해질 길을 스스로 찾았듯이, 엄정화 역시 자신이 걷고 싶은 길로 묵묵히 나아갔다. 3년 전 그는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오케이 마담’(감독 이철하)을, 지난해에는 5년 만의 새 드라마 tvN ‘우리들의 블루스’를 선보였다. 지난 2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그는 “나이가 들며 작품 제안이 줄어든 걸 느낄 시기에 ‘닥터 차정숙’ 대본을 읽고 힘을 얻었다”면서 “우리 곁에 있는 많은 차정숙들이 울고 웃으며 공감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배우로서 충족감을 느낀다면, 가수 활동으로는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다. 일요일이면 전날 드라마를 봤을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해 새벽부터 눈을 번쩍 뜨고, 평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펼치며 짜릿함을 느낀단다. 그는 천생 가수다. 긴장하는 듯 보여도 단상에 오르면 관객 앞에 서면 눈빛부터 돌변한다. 울컥해하다가도 조명을 받으면 준비한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해낸다. 유튜브 등에 올라온 ‘댄스가수 유랑단’ 공연 현장 영상이 화제를 모으며 과거 활동 영상을 순회하는 팬들도 늘어났다. 15년 전 ‘D.I.S.C.O’ 무대 영상에 최신 댓글이 올라올 정도다. 5년 전 공연한 ‘엔딩 크레딧’ 무대 영상에는 “가수를 하려면 엄정화처럼, 연기를 하려면 엄정화처럼, 언니는 정말 최고야”라는 댓글이 달려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었다.

영원히, 엄정화 [브라보 차정숙]
5년 전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엔딩 크레딧’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엄정화.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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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는 tvN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엄정화는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고 싶어 늘 대기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그는 ‘오케이 마담’ 개봉 당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나이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에 갇혔다면 서른넷 이후로 앨범을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스로 한계를 두긴 싫다. ‘내가 이걸 못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뚫어야 할 벽이 나이뿐이랴. 돌이켜 보면 엄정화는 구시대의 편견과 전면에서 맞서왔다. ‘서른 넘은 여가수가 춤을 어떻게 추냐’, ‘마흔 넘은 여배우는 멜로를 못 한다’는 지적이 마구 오가는 때였다. 선입견과 차별로 점철된 장벽 앞에서 엄정화는 이런 생각을 했단다. “후배들이 저를 보고 힘을 얻을 거란 생각으로 도전한 적도 있어요. ‘저 선배도 있으니 나도 할 수 있겠지?’라는 마음을 품길 바랐거든요.”(‘오케이 마담’ 언론 인터뷰)

영원히, 엄정화 [브라보 차정숙]
엄정화는 이효리를 비롯해 여성 연예인의 롤모델이자 버팀목으로 꼽힌다. 티빙 ‘서울체크인’ 방송화면 캡처 

의도대로다. 엄정화는 가수 이효리를 비롯해 여러 후배의 롤모델로 꼽힌다. 티빙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가 엄정화에게 건넨 “언니는 언니 같은 언니도 없는데 어떻게 버텼냐”는 질문이 울컥했던 건, 엄정화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모두가 알아서다. 기댈 언니 하나 없던 그는 그저 불안감을 딛고 버티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그의 이름 앞에는 ‘만인의 언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스스로 서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엄정화란 존재는 상징적이다. 엄정화는 지난달 엘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이 이렇게 저무는 걸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늦었다는 생각 말고 좋아했던 걸 다시 해야 해요. 원대한 꿈이 아니어도 좋아요. 나 자신을 위해 뭐든 하다 보면 새로운 시야가 열려요.” 그 자신이 산증인이다. 배우와 가수, 어느 꿈도 놓지 않은 결과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차정숙이 우리네 인생을 대변하듯 오늘도 수많은 ‘엄정화’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리고 있다. 엄정화의 새 전성기가 남다른 의미로 와닿는 건 그래서다. 그가 3년 전 발표한 곡 ‘호피무늬’ 가사처럼, 영원한 건 없다 해도 영원할 엄정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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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앞으로도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방송화면 캡처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