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거래, 이젠 심야도 가능…‘기대 반 우려 반’

27년 만에 바뀌는 외환시장 판도
시간 연장되고 외국 금융기관도 참여 가능
시중은행, 야간 데스크 충원·딜링룸 꾸리고 ‘분주’
선진국 지수 편입 기대…환율 변동성 높아질 수도

기사승인 2024-07-02 06: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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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거래, 이젠 심야도 가능…‘기대 반 우려 반’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화면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외환시장 빗장이 풀렸다. 외환시장 거래 시간이 늘어났고, 한국에 소재하지 않은 외국 금융기관도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한국 증시의 선진국 지수 편입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분간은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외환 거래 시간이 기존 오전 9시~오후 3시30분에서 1일부터 오전 9시~다음날 오전 2시까지로 연장됐다. 새벽 2시는 국제 금융 중심지인 영국 런던 금융시장의 마감 시간이다. 외환거래가 가장 활발한 때가 바로 이때다. 정부는 최종적으로는 24시간 개방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또 외국환 업무 취급기관(RFI) 자격을 갖추면 해외 소재 외국 금융사도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외화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국내 금융기관 또는 외국은행의 국내 지점만 거래할 수 있었다. 현재 총 29곳의 외국 금융기관이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금융기관(RFI)으로 등록했다.

한국 정부는 그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로 환율 안정에 초점을 두고 외환시장을 보수적으로 운영해 왔다. 하지만 거래 시간이 한정적이고, 해외에 소재한 외국 금융기관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 성장이 어렵고, 일방향 거대수급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외환시장이 쉽게 출렁이는 등 문제의식이 있었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지금과 같은 낡은 도로로는 그간 비약적으로 확대된 이동 수요를 감당할 수도 없고, 좁은 도로 때문에 안정성이 오히려 위협받을 수 있다”면서 “나라 밖과 연결되는 수십 년 된 낡은 2차선의 비포장도로를 4차선의 매끄러운 포장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하고자 한다”고 외환시장 구조 개선 의의를 밝힌 바 있다.

외환시장 개방 확대는 선진시장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지난 20일 ‘2024년 연례 시장 분류’ 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선진국(DM) 지수 편입이 이번에도 불발됐다.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면 이를 추종하는 글로벌 자금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어, 정부는 수년째 선진국 지수 편입을 준비해 왔다. 이번 편입 불발은 공매도 금지가 가장 큰 원인이긴 하지만, MSCI는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 불가 이유로 △역외 외환(현물) 시장 부재 △영문 자료 부족 △외국인 투자자 등록의무 등을 함께 지적해 왔다.

당국은 거래 시장 연장을 앞두고 거래·결제·회계처리 등 시범운영 등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외환당국은 지난 2월부터 거래 연장시간대 시범거래를 통해 거래체결과 확인, 결제 등 관련 절차들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점검했다.

글로벌 금융 기관과 경쟁할 처지에 놓인 시중은행들도 외환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해 왔다. 하나은행은 국내 최대 규모의 24시간 딜링룸을 개관했다. 신한과 농협은행은 외환 딜러를 추가 채용하는 등 원활한 ‘야간데스크(야간 근무)’ 운영을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시스템을 정비해 왔다. 지난 3월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1명의 딜러만 상주하는 야간데스크 문제로 거래시간 연장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를 받기도 했다.

이번 개장시간 연장으로 한국 주식·채권 거래를 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새벽 2시까지 국내 금융회사나 외국 금융기관을 통해 달러화를 원화로 실시간 환전할 수 있게 된다. 국내 투자자들 역시 야간 시간대 미국 주식·채권을 살 때 임시환율이 아닌 실시간 시장 환율에 따라 환전할 수 있다. 야간에 발표되는 주요국의 경제지표가 반영된 실시간 환율로 즉시 환전을 할 수 있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또 국내 원화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의 공급 주체가 다양해지고 거래량이 늘어나면 환율 변동성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외환시장이 선진 금융기법을 앞세운 외국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해외의 투기성 자본이 환 시장을 왜곡시키고, 거래량이 적은 야간 시간대에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를 해소하려면 MSCI 선진국 지수 포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에서 외환시장 개방화를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일단 외환거래량이 늘어나면 유동성 제고효과가 있고, 원화 신용도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당분간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거래시간 연장으로 거래 규모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당분간은 환율 변동 폭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면서 “외국 투자자들이 원화를 중국 증시에 투자할 때 헤지 용도로 투자를 많이 하는데, 중국 증시와 한국 증시 동조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은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이번 주 외환시장은 큰 폭의 변동성이 예상된다. 프랑스 총선 결과에 따른 극우 세력 집권여부, 4일 영국 총선, 6월 미국 고용시장 발표,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등 다양한 재료 등으로 달러-원 환율의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라며 “1일 자로 국내 외환거래 시장이 새벽 2시까지 늘어난 것도 외환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는 재료”라고 분석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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